낭백스님과 범어사
link  관리자   2021-09-25

1600년대 후기, 동래 범어사에는 낭백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범어사로 출가하여 공양주 소임을 열심히 살았고, 보시행을 발원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재물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베풀었습니다.

현재 부산 동래의 기찰 큰 길가에는 행인의 눈을 끄는 큰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 맑고 깨끗한 샘물이 있어 나그네의 갈증을 달래주는데, 이 소나무와 우물은 낭백스님이 행인들을 위해 심은 나무요 판 우물입니다.

또 스님은 동래의 칼치재에다 오두막을 얽고 짚신을 삼아 이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주었으며, 동래에서 온천으로 가는 대낫다리 동편의 산기슭을 개간하고 참외, 감자, 옥수수 등을 가꾸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스님이었지만, 당시 억불정책 하에서 동래부사들이 범어사에 가하는 핍박은 언제나 스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동래부사에서는 범어사에 갖가지 잡역을 부과하였고, 관리들은 기분이 내키는 대로 스님들을 혹사시켰습니다.

절에서도 할 일이 태산같은데 매일같이 잡역에 들볶이니 어지간한 승려들은 범어사에 붙어 있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낭백스님은 동래부사를 찾아가 새벽예불도 제대로 할 시간이 없는 승려들의 고달픔을 하소연하고자 했지만, 동래부사는 만나주지 조차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낭백스님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는 이제 이 생을 마치고자 합니다. 내생에는 큰 벼슬에 올라 공부하는 스님들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가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보살피겠나이다."

이튿날 아침, 낭백스님은 범어사 대중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몸을 보시하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내가 간 후 35년이 지나서 절의 잡역을 없애주고 불사를 위해 힘쓰는 관리가 오면 그 사람이 나인 줄 알게."

그리고는 금정산으로 올라가 범에게 몸을 던져 보시하였습니다. 범이 먹다가 남은 시체는 며칠 후 나무꾼들에 의해 발견되어 절로 옮겨서 화장하였는데, 그 때 사리와 영골이 나와 모신 탑이 지금도 범어사에 있습니다.

과연 세월이 흘러 35년이 지나자, 당시 이조판서를 지낸 조상경의 아들 조엄(1719-1777)이 동래부사로 부임해 왔습니다.

따뜻한 봄날, 산천도 구경할 겸 범어사를 찾게 된 그는 동구 밖을 지날 때 묘한 향수를 느꼈고, 절에 이르러서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감격에 젖으며 법당에 올라가 무수히 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절의 사정을 스님들에게 낱낱이 묻더니 승려들의 모든 잡역을 면제시켜 주었고, 많은 불사를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범어사 스님들은 너무나 기이하여 순찰사에게 나이를 물었더니 35세라는 것이었습니다.

스님들은 낭백스님의 이야기와 함께 오늘이 낭백스님의 35번째 재삿날이라는 것을 일러주자, 조엄은 자신의 전생이 낭백스님임을 깨닫고
평생을 통하여 범어사에 많은 불사를 하였습니다.















일타 큰 스님의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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